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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

보물 제182호. 1519년(중종 14)에 형조좌랑 이명(李洺)이 건립한 양반주택의 별당형 정자이다.

정자의 평면은 丁자 모양이며, 서쪽으로 1칸 크기의 온돌방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두 개 연이어 있다. 다음 1칸 크기의 마루방을 두고 그 북쪽으로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일렬로 늘어선 방과 마루에 연이어 동쪽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큰 대청을 두었다.


방과 대청 주위로 툇마루를 두고 계자난간을 둘렀다.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를 얹었다. 주두 위에는 밑면이 초각(草刻)된 첨차를 놓고 소로들을 얹어 굴도리 밑의 장여를 받쳤다. 보방향으로는 쇠서 하나를 내밀어 초익공(初翼工) 구조를 이루고 있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 위에 화반을 두고 소로를 얹어 굴도리의 장여를 받치게 되어 있다.

가구는 오량(五樑)으로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의 동자기둥에 첨차와 소로를 짜넣어 종보와 중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종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대청바닥은 우물마루로 마루 밑이 사방으로 터진 누마루식이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나 합각머리 아래만은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대청 서쪽의 온돌방과 마루 쪽에는 방주(方柱)를 세운 굴도리집으로 간결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처마도 대청 쪽은 부연을 단 겹처마로서 팔작지붕을 이루나 서쪽 방 쪽에는 홑처마로서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정자의 동쪽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의 둥글게 다듬은 돌에 의도적으로 구멍을 세 개 뚫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정자의 몸채는 정자 서쪽에 있는데 정승이 세 사람이나 탄생하였다는 영실(靈室)이 있고, 그 평면은 양택론에서 길형으로 말하는 用자형으로 되어 있다.


한편 MBC ‘서프라이즈’에서 임청각과 이상룡 선생에 얽힌 비극을 소개했다.

12일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에서는 1911년 일제강점기, 소중히 지켜온 고택을 판 남자 그 후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경상북도 안동에는 99칸의 기와집 임청각이 있었다. 그곳은 존경받는 인물, 석주 이상룡 선생의 거주지였다.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에서 따온 임청각은 퇴계 이황 선생이 직접 현판을 썼다. 

임청각을 가문의 혼으로 여겼던 이상룡 선생은 1911년, 한일강제합병에 임청각을 비롯해 재산을 모두 처분했다. 독립운동을 위해서였다. 이상룡 선생은 노비들까지 모두 풀어주고 중국으로 떠났다. 

그는 식솔들을 이끌고 서간도에 정착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고,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다. 본인 뿐만 아니라 아들, 조카 등 집안에서 무려 9명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안타깝게도 1932년 이상룡 선생은 임청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병환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1945년 광복 이후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은 40년 만에 안동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들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반 토막난 임청각과 그 사이의 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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