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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경제

이완용 가계도 후손 죽음 최후 본관 고향 궁금증 알아보기

by chickyu 2018.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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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미스터선샤인 드라마에서 이완익이라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을사오적 중 한명 이완용에 대해서 알아보는 포스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오늘 알아볼 내용은 이완용 가계도, 후손, 죽음, 최후, 본관, 고향 등 이완용에 관한 궁금증 입니다.

이완용의 일본이름은 리노이에 칸요 입니다. 우봉이씨로 1858년 7월 17일 경기도 광주부 낙생면에서 태어났습니다. 1926년 2월 11일 67세 나이로 조선 경성부 옥인동에서 사망했습니다. 사망당시 최종국적은 일본이였습니다. 이완용의 후손으로는 장남 이승구, 차남 이항구, 손자 이병길이 있습니다.

이완용은 친청, 친미, 친러, 친일 코스를 차례로 거쳐 민족 반역자(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고종황제의 강제퇴위, 정미7조약, 기유각서,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주도하면서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모두에 분류되었습니다. 아무리 젊은 시절 명석했던 사람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악행들을 저지르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이완용은 친일행각으로 당시 재산은 돈 300만원으로 지금의 돈 450억원 가량을 축적했습니다. 병탄 이후 벌어들인 돈이 현재 가치로 400억~450억원이 넘으며, 이는 또한 병탄 전의 자기 일가의 재산에 비해 3배나 늘어난 것입니다. 최근 그의 후손들이 땅을 찾는다고 난리법석을 부리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판단됩니다. 물론 몇몇 개념있는 일부 후손들은 자신의 성을 바꿔가면서까지 이런 땅 찾는 형태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이완용 일가는 당시에는 굉장한 사치품이었던 자동차도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시절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고종과 순종에게 아첨을 하기 위해 자신이 타고 다닐 차와 조선 왕실용 어차를 들여왔는데 고종과 순종과 왕실을 위한 어차로는 캐딜락과 다임러와 오버랜드를 들여왔고 데라우치 자신은 위슬리차를 타고 다녔으며 그 외에 이완용과 송병준을 포함한 고관대작들도 뷰익이나 포드, 쉐보레 등의 차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물려단은 금액이나 은사금으로 받은 금액은 미미하나 거의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를 통해 벌어들인 것이라고 합니다. 경기도와 전라도 일대에 여의도의 7.7배 정도면적의 땅을 보유했으며, 집을 여러번 옮긴 부동산 투기의 선구자입니다. 이 중 훗날 국가에 귀속시킨 것이 3천평 남짓인데 이는 그의 땅의 0.05% 수준이라고 합니다.

몰수원칙상 그가 받은 은사금과 이자를 고려한 금액만 몰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후손들이 소송을 걸어 되찾았고 이완용의 후손은 그씨가 어디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듯 소송으로 되찾은 땅을 최대한 빨리 팔아버린 뒤 캐나다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완용은 매년 겨울철만 되면 해소와 천식, 폐렴과 흉통 등으로 고통을 겪은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보이지 않고 이런 증상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1926년 2월 11일 병세가 계속 악화된 이완용은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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